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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400명 동원 아시오광산, 세계유산 등재 논란
일본이 도치기현 닛코시에 있는 아시오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올리려는 움직임을 이어가면서, 한일 과거사 갈등의 또 다른 쟁점이 부상하고 있다. 이 광산은 일본 근대 산업화와 공해 문제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일제강점기 조선인 2400여 명이 동원돼 위험한 노동을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군함도와 사도광산에서 되풀이됐던 ‘산업유산의 빛과 강제동원의 그림자’ 논쟁이 아시오광산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아시오광산은 17세기 초 구리가 발견된 뒤 에도막부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된 광산이다. 이후 메이지 시대에 들어 일본의 산업 성장에 필요한 구리를 공급하며 대표적인 산업 현장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측은 이 광산이 근대화의 과정을 보여줄 뿐 아니라, 광산 개발로 발생한 공해와 이를 극복하려 한 역사를 함께 담고 있다는 점을 세계유산 등재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닛코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시오광산의 세계유산 등록을 준비해왔다. 2007년 일본 문화청에 세계유산 잠정목록 추가를 제안했고, 지역 차원의 추진 활동도 계속됐다. 최근 열린 아시오광산 세계유산 등록 추진 모임 창립 20주년 행사에는 가토 고코 내각관방참여 겸 산업유산정보센터장이 강연자로 나서 등재 분위기에 힘을 실었다. 그는 아시오광산의 세계사적 가치와 공해 발생·극복의 역사를 정확히 알릴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아시오광산을 둘러싼 역사에는 일본이 강조하는 산업 발전의 서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말기 이곳에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대거 동원됐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자료에 따르면 1940년 8월부터 1945년 5월까지 아시오광산에 동원된 조선인은 2416명으로 집계된다. 1944년 9월 이전에는 ‘관 알선’이라는 형태로, 그 이후에는 징용 방식으로 동원이 이뤄졌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주로 위험도가 높은 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 역시 일본인보다 낮았거나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식민지 조선인을 동원하고, 이들을 열악한 조건 속에 배치했다는 점에서 아시오광산은 단순한 산업시설이 아니라 강제동원 피해의 현장이기도 하다.

희생 규모도 확인되고 있다. 도치기현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은 1997년 아시오광산 일대에서 숨진 조선인이 73명이라고 발표했다. 이들의 사망 원인에는 폐렴, 장티푸스, 낙반 사고 등이 포함됐다. 특히 사망자 중에는 1세 미만 유아 22명이 포함된 것으로 조사돼, 광산 노동자뿐 아니라 가족 단위로 겪은 고통까지 짐작하게 한다.
쟁점은 결국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이 같은 강제동원의 역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있다. 일본 측은 아시오광산의 산업적 가치와 공해 대응의 경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조선인 강제동원, 차별적 노동 환경, 사망 피해를 주변부로 밀어낸다면 또다시 ‘역사의 선택적 전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 현지 전시에서도 관련 내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교도통신은 지난해 아시오광산기념관이 산업 발전과 공해 극복의 과정을 소개하면서도 강제노동 관련 내용은 전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는 군함도와 사도광산에서 이미 논란이 됐던 문제와 닮아 있다. 산업유산의 성과는 부각하면서, 그 과정에서 희생된 식민지 노동자의 역사는 빠뜨리는 방식이다.
전문가들도 아시오광산 등재 추진 전략을 주목하고 있다. 현명호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학술회의에서 일본 측이 아시오광산을 공해 방지 기술의 성과와 연결해 등재를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공해 극복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는 전략이 강제동원 문제를 희석하는 장치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우리 정부도 사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지난달 말 도치기현 닛코시 아시오광산 일대를 찾아 실태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아시오광산이 유네스코에 정식으로 등재 신청된 것은 아니지만, 향후 절차가 본격화될 경우 강제동원 역사 반영 여부를 두고 외교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사도광산을 둘러싼 갈등과도 맞물려 있다. 지난 12일 니가타현 사도시에서 열린 일본 측 사도광산 추도식에서는 올해도 조선인 노동의 강제성이 명확히 언급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 대표는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이 전쟁 중 위험하고 가혹한 갱내 환경에서 고된 노동을 했다고 표현했지만, ‘강제노동’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사도광산 추도식은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 협의 과정에서 약속한 조치였다. 그러나 강제성 표현을 둘러싼 양국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한국 정부는 올해도 참석하지 않았다. 군함도, 사도광산에 이어 아시오광산까지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 경우,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한일 간 불신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아시오광산은 일본 근대화의 상징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공간이다. 그곳에는 산업 발전의 역사와 함께 식민지 조선인들이 감당해야 했던 위험한 노동, 차별, 죽음의 기록이 남아 있다. 세계유산 등재 논의가 의미를 가지려면, 빛나는 산업의 성과뿐 아니라 그 이면의 어두운 역사까지 함께 드러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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